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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평이씨 시조 이덕명의 신도비
2. 신도비의 의미
신도비의 신도의 의미는 신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민묘는 곡담을 두르고 문무인석, 상석, 망주석 등을 설치하였고, 종2품 이상의 고관묘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울 수 있었다. 신도비는 일반적으로 묘의 동남쪽에 세운다. 그 이유는 풍수지리적으로 동남쪽이 신도(神道)이기 때문이다. 왕릉에도 신도비를 세웠으나 문종때 이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세종의 신도비가 마지막이 되었다.
신도비의 형태는 비석을 받치는 대좌(臺座),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 비신을 덮는 개석(蓋石)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대좌는 거북모양을 조각한 귀부(龜趺)와 네모로 깍은 방부(方趺)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개석은 이수(?首)와 옥개(屋蓋)가 있는데, 이수는 이무기를 새긴 개석을 말하고 옥개는 집 지붕형태를 한 것이다.
비문은 일반적으로 비의 음양면(앞뒤)에 새기지만 옆면에도 새긴다. 비신의 상단부 또는 이수에 비의 묭칭을 새기는데 이것을 제액(題額)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제액은 전서체로 쓰는데 이것을 전액(篆額) 또는 두전(頭篆)이라고 한다. 비문에 글을 지은 사람을 찬(撰), 글씨를 쓴 사람을 서(書), 전액을 쓴 사람을 전(篆)이라고 기록한다. 대개는 이들 업무를 같은 사람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비의 찬술은 관례상 정3품 이상의 관리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도비문은 전체적으로 비명, 주인공의 가계, 주인공의 행적, 글을 지은이, 글씨를 쓴 이, 그리고 건립연월일 등을 기록한다.
비문의 서체는 산문으로 된 서(序)와 운문으로 된 명(銘)으로 구분된다. 서와 명이 함께 한 비문을 일반적으로 비명병서(碑銘幷序)라고 한다. 때로는 서 또는 명만으로 비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서는 비문을 작성한 경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명은 4언 절귀, 5언 절귀, 7언 절귀 등의 운문으로 이루어진다. 명에서는 짧고 화려한 수식을 동원하여 공덕을 찬양한다. 서체에는 예서, 해서, 행서 등이 쓰이는데, 전서는 조선 숙종 때 허목이 쓴 척주동해비가 있을 뿐이며 해서가 가장 많고 다음은 행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