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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달영 날짜 2019-07-27
제목 우리집안의 대학자 석정 이정직에 대한 책
내용


우리 집안의 대학자인  石亭(석정) 李定稷의 고손인 ◌◌대학교 학장으로 계셨던 이◌석 교수님에게서 석정에 관한 책을 보내왔다.
제목은 <전북 서예의 중흥조 석정 이정직>으로 저자는 金道瑩(김도영) 문화재 박사로 전북 문화재의원, 한국서예학회이사, 한국동양예술학회 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신평이씨로 세수 27로 괴당공파(槐堂公派) 진사공계(進士公系)이다.
‘자는 형오(馨五), 호는 석정(石亭)이다.
그는 4학(성리·시학·천력·산수)과 실학, 서화에 통달한 유학자다.
1841년(헌종 7년)에 태어났고, ‘公의 천질이 탁월하여 4, 5세에 눈으로 본 것은 다 외우고 모사하여 (차작이 없었고) 어긋남이 없었고, 12, 3세에 주역을 해석, 침식을 잊기까지에 이르렀다.
 
28세에 북경으로 가서 중국의 명사 유상과 탁경염이 公의 문장이 경전에 근본을 두어 전형적이고 아담하기가 여유 있음을 칭찬하고 찬탄하였다.
그의 학설 역시 종전에 발견하지 못한 것을 많이 발표하고 서예가 절묘하여 글씨를 구하는 자가 문전에 (줄을)이었다 한다.
한편 약과 점치는 법, 역법, 음률, 명물, 기수, 도화 등을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영사 이봉구와 책상을 같이하여 公을 천거하여 등용코자 하였으나, 본뜻이 아니라하여 사절하였다.
 
선생의 유고(遺稿)인 연석산미정문고 20여권 책을 1923년 석정 선생문집과 2002년에 석정 이정직 유고 4권으로 출판하여 후세에 전한다.
1910년 경술(庚戌) 11월 2일 향년 70세로 졸하였다.’ 고 되어 있다.
 
선생은 1841년(憲宗7 辛丑) 6월 3일생으로, 김제시 백산면 요교리에서 출생했으며,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4세에 천자문을 떼었고, 5세에는 당시의 주화인 엽전을 한눈에 보고 지면에 그대로 그려내므로 써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신동이었다.
선생의 아버지는 석정이 너무 일찍부터 머리를 쓰게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9세에 서숙에 입학시켰다.
선생은 그 해에 통감 15권을 완독했다.
 
선생이 10세 되던 해 아버지께서 친히 주시는 맹자 7권을 그대로 모두 읽고, 다음 해에는 논어를 완독하였다.
선생의 아버지는 남달리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엄숙한 지도를 하였다.
아들이 오만해질까 염려하여 언제나 인격적인 면에서 아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 석정이 열두 살이 되자 당시 역학에 뛰어난 태인의 강회민 문하에 보내어 역학(易學)에 대한 기초이론을 공부시킨 후 이듬해에는 금구의 안정봉에게 보내어 본격적으로 학문을 닦게 하였다.
선생은 여기에서 대학과 중용, 수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을 두루 익혔으며 실학사상에 눈 뜬것도 바로 이때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에는 가세가 기울어 끼니를 연명해야 할 처지였으나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28세(1869)에 중국에 1년 동안 머무를 때 의약, 성력(星曆), 지리, 묵화 등을 연구했으며, 연경(燕京)의 이름난 선비인 劉庠(유상)과 卓景廉(탁경렴)과 교유하였다.
유상, 탁경염 등과 교류하면서 상호간 학문의 깊이를 알게 되었는데 좀처럼 칭찬을 해주지 않는 중국의 학자들도 선생의 심오한 학문적 깊이와 시문, 서화 등을 보고 감동하였으며 "조선국에 이만한 대문호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는 찬사를 보냈다.
 
귀국 후에는 자신의 학문을 체계화한 《연석산방미정문고(燕石山房未定文庫)》(11책) 등을 남겼는데, 이후 조선시대의 고전적인 학문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전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구례의 황현(黃玹:1855~1910)과 만경(萬頃)의 이해학(李海鶴)과 더불어 호남삼걸이라 불렸다.
중국에서 돌아와 임오란시 지리산 가운데에 몸소 채소와 곡식으로 부모를 봉양하니 사람들이 이효자(李孝子)라 일컬었다.
 
선생은 칸트, 베이컨 등 서양철학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시문학에 있어서는 시경주해(詩經注解), 시학증해(詩學證解), 소여록(燒艅錄), 간오정선(刊誤精選), 소시주선(蘇詩註選) 등이며 성리학(性理學)에서는 연석산방미정문고(燕石山房未定文藁)가 있고 이밖에 어음학(語音學), 천력학(天曆學), 술수학(術數學) 등에 관한 책이 여러 권이 있다. 이 가운데 시문의 일부를 간추려 석정집 3권이 현재 전하고 있다.
이 저서들은 당시 우리 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자료로서 조선조의 고전적인 학문 체계에서 근대적인 학문체계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중요한 자료들이다.
 
선생의 문체는 구양순, 시는 두보의 것을 즐겼고, 서예는 왕희지 체를 기본으로 하되 구양순체의 해서와 동기창체의 행서, 안진경체의 비갈명을 즐겨 썼다. 가장 특징 있게 잘 쓰는 해서와 가는 붓체는 다른 사람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묵화는 사군자를 중심으로 새, 초목, 괴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잘 그렸으며 특히 괴석은 그의 작품 중에서 매우 독특한 것이기도 하다.
 
시와 글, 서예와 그림의 대가인 석정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문하생들 중에는 이운 라갑순(羅甲淳), 유제 송기면, 벽하 조주승, 이당 조병헌, 석전 김연호, 소강 송헌호, 설송 최규상, 오당 강동희, 유하 유영완 등과 같은 문장가와 명필가들이 배출되었다.
 
저서에 동, 서 사상 절충론을 주장한《연석산방미정문고》(11책),《연석산방미정시초(燕石山房未定詩草)》(5책),《연석산방미정문고별집(燕石山房未定文庫別輯)》(2책) 등이 있다.
 
선생이 비교적 현대인물이기에 公에 대한 논문과 자료는 풍부하고, 현재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쌍매당이나 손곡과 더불어 우리 가문의 3대 문장가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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