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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달영 날짜 2020-03-11
제목 쌍매당 喪事(상사)에 변계량이 쓴 祭文제문)
내용 응봉사(應奉司)에서 쌍매당(雙梅堂)께 드리는 제문
                                                
변계량(卞季良)
管理者註
양촌집에 쌍매당께서 돌아가시자 응봉사를 대표하여 변계량이 쓴 제문이다. 쌍매당의 별세를 슬퍼하는 내용 중에 쌍매당의 높은 인격과 학문에 대한 내용이 있다.
쌍매당의 별세를 안타가워하는 조문이 여럿 있지만 기관을 대표한 조문은 남아있는 것이 흔치 않은 것 같다.


아, 선생이여 / 嗚呼先生
참으로 돌아가셨습니까 / 而至然乎
선생은 도를 지녀 / 先生有道
저희들의 영수가 되셨습니다 / 領袖吾徒
학문은 백가에 해박하여 / 學該百氏
두루 참고하고 순수함을 취하니 / 參駁取純
운연의 변화무쌍함과 / 雲煙變態
강한의 넘실거림이었습니다 / 江漢漂淪
하늘이 뜻이 없다 한다면 / 謂天無意
공이 사문에 참여했으니 뜻이 없지 않았고 / 公與斯文
하늘이 뜻이 있다 한다면 / 謂天有意
공이 오래 살지 못했으니 뜻이 있지 않았습니다 / 公不久存
옛적 공이 등용되지 않았을 때는 / 昔公未用
국가가 병으로 여겼더니 / 國家病之
이미 등용되기에 이르러서는 / 及其旣用
또 더디다고 하였습니다 / 又以爲遲
아아, 저희들은 / 嗟嗟生等
외람되게도 하료에 있으면서 / 忝與下僚
조석으로 좌우에 모셨는데 / 晨夕左右
공의 도는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고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았습니다 / 鑽堅仰高
지금 갑자기 길이 떠나심에 / 忽此永違
마침내 따를 수 없으니 / 竟莫之追
사문은 전할 곳 없고 / 斯文無傳
배우는 자는 스승이 없습니다 / 學者無師
공의 당에 오르니 / 升公之堂
관에 들고 휘장으로 가렸는데 / 藏棺蔽帷
박한 제물을 바치고 / 薦以薄奠
절하면서 제문을 아뢰오니 / 拜而陳辭
위로는 국가를 위해서 애통해하고 / 上爲國慟
아래로는 저를 위해서 통곡하나이다 / 下哭吾私

■ 應奉司(응봉사) : 다른 나라와의 외교문서를 관리하는 관청으로 1392년(태조 1)에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라 하던 것을, 1410년(태종 10)에 승문원으로 개칭 하였다.
■변계량: 정도전과 권근의 뒤를 이어 조선초 관인문학을 좌우했던 인물이다. 20년 동안이나 대제학을 맡고 성균관을 장악하면서 외교문서를 쓰거나 문학의 규범을 마련했다. 13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주부, 진덕박사 등의 벼슬을 담당했다.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 을과 제1인으로 뽑혀 당상관이 되고 예조우참의가 되었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된 뒤 집현전대제학이 되었다. 당대의 문인을 대표할 만한 위치에 이르렀으나 전대의 이색과 권근에 비해 격이 낮고 내용도 허약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조선 왕조를 찬양하고 수식하는 일이었다. <태행태상왕시책문>에서는 태조 이성계를 칭송하면서 조선 건국을 찬양했고, 경기체가인 <화산별곡>에서는 한양도읍을 찬양했다. <태조실록>의 편찬과 <고려사>를 고치는 작업에 참여했다.[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