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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달영 날짜 2020-05-10
제목 신도비 건립에 우선하여 추진되어야 할 문제
내용 신도비 건립에 우선하여 추진되어야 할 문제

요즈음 우리 집안에 쌍매당의 신도비를 다시 세우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몇가지 적어보려한다.
아마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의 신도비에 쌍매당의 後繼(후계)가 판서공파,문정공파,사인공파로  전체적으로 연결되어진 것을 바로잡자는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다시 세우는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도비를 다시 세우는 것에 앞서  先行(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지금의 현재의 신도비의 처리문제이다.
현재 서있는 신도비에 대하여 정리해보면,
1968년 세운 것으로 송악면 오곡리 오서마을 도로변에 서 있다.
장방형의 籠臺石(농대석)에 烏石(오석))의 碑身(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었다.
碑의 전체 높이는 273㎝, 비신의 크기는 62×35×185㎝이고 농대석은 120×95×28㎝이다.
撰者(찬자)는 가선대부 前 行승정원좌승지겸 경연관 참찬관 춘추관수찬관 金炳秀(김병수)이고,
頭篆(두전)은 통정대부 前 行승정원우부승지 겸 경연관 참찬관 춘추관수찬관 金炳億(김병억)이 쓴 것으로 비명 幷序(병서)에 되어있다.
頭篆에는 『大匡輔國崇祿議政府領議政文安李公神道碑銘』으로 되어 있다.
글씨는 우리집안 20世孫 寓永(우영)이 썼다.
새로운 신도비가 설 경우 지금의 신도비는 없앨 것 인가?
같이 존치 할 것인가?
존치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존치할 것인가?
이 문제도 결정했어야 한다.

둘째 신도비문의 撰者(찬자)는 누가 할 것인가?
글씨를 쓰는 사람은 누가할 것인가?

신도비에 들어가는 비문을 작성하는 사람, 글씨를 쓰는 사람, 전서를 쓰는 사람은 대개 인근에 살고 있는 집안사람이나 외척, 혼인으로 맺어진 친척, 정치적인 성향이 같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문인, 또는 당대의 문장가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문을 찬술하는 찬자(撰者)는 후손이나 함께 관직 생활을 했던 동료, 학맥을 같이하는 문인(門人), 친구 등 절친한 관계에 있던 인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비문의 撰者(찬자)가 문중에서 나오면 後世家(후세가)들이 약간 공정하게 보지 않는 관습이 있어, 후손과 함께 관직 생활을 했던 동료, 학맥을 같이하는 門人(문인), 친구 등 절친한 관계에 있던 인물로 관직과 품계(정 3품 통정대부 이상)를 중시해서 결정하였으며, 때로는 당대의 문장가에게 의뢰하여 신도비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였으므로, 대체로 行狀(행장)은 후손이 쓰는 경우도 있으나 碑文(비문)은 他姓(타성)에서 쓰는 것이 일반화된 것으로 본다.

이들 인물의 경우에도 관직과 품계를 중시해서 결정하였으며, 때로는 당대의 문장가에게 의뢰하여 신도비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였다.

글씨를 쓰는 사람은 고인이나 그 후손과 인척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글씨로 인하여 신도비의 예술적 가치가 한층 높아지므로 당대에 유명한 서예가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글씨는 문중에서 써도 된다고 본다.

셋째 신도비의 形態(형태)나 規模(규모)가 결정되어야 한다.
조선시대에 가장 일반적인 신도비의 형식은 머릿돌을 집의 지붕 모양으로 만들고 받침도 사각형으로 간단하게 만든 것이다.
머릿돌의 생김새에 따라서 팔작지붕형, 삿갓형, 평탄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팔작지붕형이 17세기 이후 조선시대의 신도비를 대표하는 형식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소요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경제적인 이유와, 비신이 풍화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보존상의 이점에 따른 것이다.

넷째 신도비를 세우는데 필요한 경비조달 문제이다.
신도비의 재료비(석재), 가공비(돌을 다듬는), 시공비(비석을 세우는), 비문작성 의뢰시 찬자에 대한 謝禮(사례), 글씨 쓰는 사람에 대한 謝禮(사례)와 신도비를 세우는 장소 결정에 따른 비용발생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 모든 사항이 준비된 후 비로소 신도비 재건립이 추진되어야만 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된다고 본다.
단시일내 이것을 서둘러 실행하려한다면 여러가지 오류가 생길 것이므로 시간을 두고 차근 차근 착실히 준비하여 검토하고 또 검토하여,
다시는 신도비를 다시 세우거나 하는 이런 곤혹스런 사태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