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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달영 날짜 2020-06-08
제목 쌍매당의 최고관직은 영의정이었나?
내용 쌍매당의 최고 관직은 영의정 이었나?

쌍매당의 領議政(영의정) 贈職(증직)과 實職(실직)

 먼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특히 門中史(문중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흔히 이야기하는 實證史學(실증사학)이나 民族史學(민족사학)이다.
필자가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는 범위에서만 論(논)하자면 실증사학과 그에 反(반)하는 민족주의 사학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상의 자취를 부풀려서라도 영광스럽게 기록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실 그대로를 기록해야 하는가는 연구자의 觀點(관점)의 차이이지,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필자의 생각은 우리 조상의 宗史(종사)는 家門(가문)의 歷史(역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중사를 연구할 때는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내용’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검증되지 않은 추측만으로, 조상의 자취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문중사를 연구한다면
앞으로 우리 가문에 관심 있는 자손, 학자나 世人(세인)들에게 고증된 사실마저도 의심받거나 멸시당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도 부풀려진 조상의 자취를 과연 당사자와 후손이 그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할까도 의심스럽다.

쌍매당의 최고 관직은 영의정인가?
쌍매당의 최고관직이 표기된 곳은 여러 곳이지만 모두 다르고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먼저 영의정이란 관직의 유래를 보면 ‘영의정이란 명칭은 1400년(정종 2) 4월에 관제를 정비하면서 최고 정무기관인 도평의사사(都評議事司)를 의정부로 개편하고, 그 최고 관직을 判門下(1), 태종 1년 4월 領議政府事(영의정부사(1), 1466년 1월(세조 12년) 관제개정 때 '영의정(1)'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한충희의「朝鮮初期 議政府硏究」上「韓國史 硏究」31쪽,109쪽]

따라서 쌍매당 당시의 영의정에 해당하는 명칭은 判門下(판문하) 또는 領議政府事(영의정부사)이다. 증직할 수 있는 당시의 관직은 ‘영의정부사’이다.
설사 쌍매당이 영의장을 지냈다고 해도,
쌍매당은 관제상 원칙적으로는 영의정으로 호칭할 수 없다.

쌍매당의 관직이 표기된 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정 2품 知議政府事(지의정부사): 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 9권, 태종 5년 3월 30일 을축 2번째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지의정부사 이첨의 졸기. 문장에 능하고, 학문에 힘씀)
지의정부사라는 관직은 쌍매당이 마지막에 갖고 있던 관직이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쌍매당의 최고 관직으로 알려져 있다.

2. 左侍中(좌시중): 신평이씨 족보 1간(1650年刊)
…諱詹始仕於我朝官至左侍中(휘첨시사어아조관지좌시중)…
우리 신평이씨의 최초의 족보로 일컬어지는 순치보에 쌍매당의 관직이 좌시중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있으나, 순치보 外, 어떤 기록에도 쌍매당이 ‘좌시중’을 지냈다는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또 설령 좌시중을 지내신 것이 확인되더라도 좌시중은 좌시중이다.
당시의 좌시중이 권한이나 직급이 후에 영의정과 같다 해도 명칭은 좌시중이어야 한다. 영의정은 영의정이고 좌시중은 좌시중일 뿐이다.
조선조의 영의정이 현재의 국무총리급이라 해서 영의정을 국무총리로 칭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는 조선개국(1392년)에 이르러 1394년 시중을 '정승'으로 바꾸었고, 1401년에는 문하부를 의정부로 개편하면서 좌정승, 우정승은 각각 좌의정, 우의정이 되었다.

3. 종1품 贊成事: 증보뭄헌비고 등 여러 사서
쌍매당이 찬성직에 있었다는 근거는
①《增補文獻備考(증보문헌비고) 職官考(직관고) 좌우찬성선생시호록》 ② 《淸選考(청선고) 貳相(이상)선생안》 ③허균의 《台閣志序(태각지서)》(이상 전종사연구위원, 현종사연구실장 이병호) ④許穆(허목)의 《眉叟記言(미수기언)별집 권8 議政府東西壁題名案序(의정부동서벽제명안 서》(전 종사연구실장 이달영) ⑤《明世叢攷(명세총고)》 台司考-貳相考(현종사연구위원 이맹호) 등의 근거가 있다.

따라서 찬성사를 지낸 것은 사실로 보이며 관제개혁 이후에 쌍매당이 최초로 찬성을 지낸 것이니, 守職(수직)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 이유로는 쌍매당의 부친 熙祥(희상)공과 조부인 承楗(승건)공은 쌍매당으로 인하여 ‘정 2품 참찬의정부사’로 증직되었다.
만약에 쌍매당이 종1품 숭록대부나 숭정대부였다면, 쌍매당의 부친인 희상공도 종 1품 품계인 숭록대부나 숭정대부로 증직 되었을 것이다.

贈職(증직)을 선생안에 넣은 경우는 없으니, 쌍매당의 찬성사 관직은 위 여러 근거에 의해 증직이 아닌 實職(실직)으로 봐야한다.
정구복박사는 쌍매당의 증직을 찬성사로 보기도 한다.

4. 영의정: 쌍매당 신도비
단기 4301년(서기 1968년)에 세워진 묘비에는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 文安李公神道碑銘(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문안이공신도비명)로 되어 있다.
碑銘(비명)은 가선대부 전 행승정원좌승지겸경연관참찬관춘추수찬관 金炳秀(김병수)이 쓴 것이고, 頭篆(두전)은 통정대부 전 행승정원우부승지겸경연관참찬관춘추수찬관 金炳億(김병억)이 글씨는 우리집안 20대손 寓永(우영)이 썼다.

그러나 어느 史書(사서)에도 쌍매당이 영의정이었다는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쌍매당의 묘소 문화재 검토시 영의정이란 典據(전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을 前車之鑑(전거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5.이정승: 門中傳言(문중전언)의 이정승
“門中傳言(문중전언)에서 쌍매당의 신도비를 안씨 문중에서 감추어 실전됬는데, 당시 쌍매당의 묘를 ‘이정승묘’라 칭하였으니 정승을 지낸 것은 맞다”는 의견도 있다.
정승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뜻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문중전언을 가지고 사실로 만드는 것은 무리이다.
문중전언은 전언일 뿐이다. 고증되지 않은 문중전언은 전설로 보면 된다.
굳이 전언을 문중사에 인용하려면 ‘문중전언’임을 前載(전재)한 후 인용해야 한다.
문중전언의 “이정승” 믿고 쌍매당을 영의정이라 했다가 典據(전거)를 요구하면 문중전언이라 할 것인가?

6.영의장: ‘朝鮮紳士寶鑑(조선신사보감)
종인 8명의 이력에 영의정 첨의 후손으로 되어있다.’는 의견도 있다.
朝鮮紳士寶鑑(조선신사보감)은 1912년 일제 강점기 일본인 田中正剛(전중정강)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다.

우리 집안의 인물 등에 고증이 없음을 미루어 참고는 할 수 있어도 사료로 채택 인용하기에는 곤란하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이 책에 나와 있는 구한말 유명인사 수천명의 略歷(약력)(약력)이 확실히 고증된 것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
즉 거기 나온 인물들은 대부분 雙梅堂(쌍매당)의 直孫(직손)으로 되어 있다. 그 중에 실제로 ‘쌍매당의 직손’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따라서 쌍매당의 관직이 ‘영의정’이란 사실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문중의 系派(계파)가 정해지기 이전의 인물들은 공동조상으로 봐야한다'는 견해를 적용한다면 우리 모두 쌍매당의 후손으로 볼 수는 있으나, 쌍매당의 관직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쌍매당은 증직된 근거가 있는가?

따라서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이라는 것은 사실인가?
조선은 개국과 함께 고려의 증직 제도를 계승해 국가에 공로를 끼치고 죽은 관인 등에게 정1품 이하의 관직을 贈職(증직)했다.
또 자손의 관직에 따라 죽은 그의 3대 조상에게 증직하는 것은 追贈(추증)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이 죽으면 정1품 이하의 관직에 증직했는데, 이후 증직 대상자나 그 내용이 확대·체계화되어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실직이 2품 이상인 자의 3대 가운데 살아 있으면 봉작(封爵), 죽었으면 증직했다. 종친 및 문무관으로 실직 2품 이상은 3대를 추증했고, 부모는 자신의 품계에 준해,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각각 1등씩 낮추어 주었으며, 죽은 처는 남편의 관직에 따랐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쌍매당품계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정2품 정헌대부이다.
본인이나 조상이 증직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따라서 쌍매당의 부친 熙祥(희상)공은 令同正(영동정)이었으나 쌍매당으로 인하여 ‘증참찬의정부사’로 조부인 承楗(승건)공 역시 令同正(영동정)이었으나 쌍매당으로 인하여 ‘증찬찬의정부사’로 증직되었다.
참찬의정부사는 의정부의 정2품 관직이다.

원칙에 의거해서는 쌍매당이 실직 정2품관이니, 부친 희상공은 참찬의정부사가 타당하나 조부 승건공의 경우 1등식 낮추어 종2품 관직을 증직해야하는데, 같은 정2품 관직인 참찬의정부사에 증직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또 조상 3대에 추증이 가능한데도 2대에 걸쳐 증직했는지도 알 수 없다.
쌍매당의 조상 2대에 대하여 추증할 정도면 본인인 쌍매당도 당연히 증직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쌍매당의 贈職(증직)에 대한 고증은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
반드시 증직되었다고도 볼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大匡輔國崇祿大夫大議政府領議政(대광보국숭록대부대의정부영의정)으로 실직을 지냈다거나, 증직을 받은 근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쌍매당이 (정2품 또는 종1품) 의정부 찬성이 최고 관직이라서 부끄러울 것도, 정1품 영의정을 증직 받았다고 해서 영광스러울 것도 없다.
증직이 사실이 아닐 경우 世人(세인)들의 웃음꺼리가 될 것이고, 사실일 경우 에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

결론적으로 쌍매당이 영의정으로 증직된 典據(전거)가 나와야 영의정을 행장에 넣거나 공식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종사연구실장 이달영]